
반야월시장 오일장, 오래된 시간표
대구 동구 신기동 174-4에 위치한 반야월종합시장. 이곳은 매달 1일, 6일, 11일, 16일, 21일, 26일—5일 간격으로 장이 열리는 전통 오일장이다. 요즘처럼 대형마트가 골목마다 들어선 시대에, 여전히 오일장에는 사람들이 많다.
이마트, 홈플러스, 식자재마트 같은 유통 공룡들이 근처에 즐비한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재래시장을 찾는다. 그것도 장날이라는 특정한 날에 맞춰서.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어쩌면 시장이라는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느림’과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별하지 않은데, 자꾸만 찾게 되는 이유
반야월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재래시장도 같지만,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품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마트에서 더 다양하고 세련된 상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곳을 자주 찾는다.
그 이유는 단지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때문이 아닐까한다. 시장은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적인 온기와 소통이 오가는 공간이다.
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길 양쪽으로 펼쳐진 노점들이다. 원래 상가 앞에도 작은 매대들이 설치돼 있고, 길 한가운데까지 자판이 들어선다. 이로 인해 시장의 통로는 자연스럽게 두 갈래로 나뉜다. 사람들은 구경하다 멈춰 서기도 하고, 흥정을 벌이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시장이라는 공간은 이런 구조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시장에서는 ‘흥정’이 기본처럼 여겨진다. 내 생각엔 한국 사람들이 특히 가격을 깎는 데 있어서는 독보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다.

시장의 심장, 먹거리 골목
시장 한가운데를 걷다 보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먹거리 골목이다. 튀긴 어묵, 즉석 치킨, 갓 구운 호떡… 기름 냄새와 고소한 향이 안 사먹더라도 뭔가하고 멈춰서 보게한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건, 시간에 따라 가격이 유동적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후 4시가 조금 넘으면 ‘3개 만 원’ 하던 상품이 ‘4개 만 원’으로 바뀌는 마법 같은 순간이 온다. 단골들은 이런 타이밍을 잘 안다.
시장만의 ‘시간표’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 가격 변동을 기다리는 것 자체도 이 시장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기다림이 남아 있는 곳
나는 1980년대생으로,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그 시절에는 무언가 갖고 싶어도 ‘오일장을 기다려야’ 했다. 그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가던 기억이 있다. 복잡하고, 시끌벅적하고, 무엇보다 설레는 공간이었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 영상도, 기사도, 쇼핑도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스킵’할 수 있다. 치킨도 이제 엄마의 퇴근시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기다림은 사라졌고, 모든 것이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시대다.
하지만 오일장은 다르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기다림이 있다. 손님이 장날을 기다리고, 상인은 손님을 기다린다. 아침 일찍 자리를 펴고 하루를 시작하는 상인들. 그들이 손님 하나하나를 기다리는 그 시간. 그 기다림 끝에 물건 하나라도 팔려 나갈 때의 안도감이, 이 시장을 움직이는 힘일지도 모른다.

반야월시장에서 느낀 것
그날, 나는 반야월시장을 천천히 걸으며 옛 기억과 지금의 풍경 사이를 오갔다. 이곳은 대형마트처럼 깔끔하거나, 쇼핑몰처럼 편리하진 않다. 하지만 이곳에는 마트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속도’와 ‘냄새’, 그리고 ‘기억’이 있다.
시장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쇼핑의 장소를 넘어서, 세대 간의 기억이 오가는 장이자, 도시 속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시장을 다 돌고 나와서 내 손을 보면 어느새 까만 봉지 3~4봉지가 들려져 있다. 항상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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